목록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3)
르네상스맨
내 마음의 나이 바람이 차다. 숨을 깊게 들이면 코에서부터 가슴까지 냉한 기운이 감돈다. 기도(氣道)가 이렇게 연결이 되어 있구나 하고 느껴지는 감각이 세삼스러우면서도 재미있어 몇 번 더 깊은 숨을 쉰다. 곧 기침을 한다. 살아오면서 감당하기 힘든 일들을 맞이해야 할 때가 많았다. 부당하고 억울한 일로 마음 앓던 날도 있었고 내 잘못으로 벌어진 일에는 스스로를 무섭게 몰아붙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무겁고 날 선 마음이라 해도 시간에게만큼은 흔쾌히 자신을 내어주는 것이라 여긴다. 오래 삶은 옷처럼 흐릿해지기도 하며. 나는 이 사실에서 얼마나 큰 위로를 받는지 모른다. 다시 새해가 온다. 내 안의 무수한 마음들에게도 한 살씩 공평하게 나이를 더해주고 싶다.
마음의 폐허 '연이의 발과 내 발을 맞대지 않는다, 사랑하는 이에게 신발을 선물하지 않는다, 방에 들어갈 때 문지방을 밟지 않는다, 빈 가위질을 하지 않는다, 밤에 휘파람을 불지 않는다. 손톱 발톱은 낮에 깎는다, 사라의 이름을 붉은 글씨로 쓰지 않는다,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미역국을 먹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나는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미신 같은 말도 잘도 믿고 지키며 살아왔다. 그러면서도 정작 믿어야 할 사람에게는 의심을 품은 채 그 사람과 그의 말을 믿지 않을 때도 있었다. 어디 타인뿐이었던가. 삶의 순간마다 나는 스스로에게조차 마음을 내어주지 않을 때가 많았다. 믿으면 믿는 만큼 상처로 돌아올 것만 같았다. 여전히 나에게 '믿음'은 살아가면서 느끼는 감정들 중에 가장 ..
말은 사람의 입에서 태어났다가 사람의 귀에서 죽는다. 하지만 어떤 말들은 죽지 않고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살아 남는다. 꼭 나처럼 습관적으로 타인의 말을 기억해두는 버릇이 없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마다의 마음에 꽤나 많은 말을 쌓아두고 지낸다. 어떤 말은 두렵고 어떤 말은 반갑고 어떤 말은 여전히 아플 것이며 또 어떤 말은 설렘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검은 글자가 빼곡하게 적힌 유서처럼 그 수 많은 유언들을 가득 담고 있을 당신의 마음을 생각하는 밤이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