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르네상스맨 (68)
르네상스맨
그때처럼 어느 날 바람에 네 향기가 실려 들어와뒤를 돌아봤을 뿐이었는데나는 그 향기에 아이처럼 울어버렸다. 네가 온 줄 알고,그때처럼 웃으며 내 이름을 부르는 줄 알고.
나는 안다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누군가에 위로가 될 때가 있다.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누군가에게 위로가 된다는 것을 알고 더욱 귀를 기울인다. 나는 그 사람을 듣는다. 그 사람은 나로 인해 위로가 된다고말한다. 나는 안다. 그 사람에게 내가 위로하는 것을. 누군가를 위로해주는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다.그저 그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월여 들어주는 것그리고 그 사람의 기분을 물어보는 것이면 된다. "오늘 하루는 어땠어요?"
잔향 누군가를 그리원한다는 거,그것 참 쉬운 일이 아니었다. 누군가 잠시 들어왔다 어느 순간 비어버린 자리를멍하니 바라봐야 한다는 것.그것도 혼자서묵묵히. 마음에 자리를 내어주고 남겨진 자리엔여전히 그의 잔향이 남아 있다. 이젠 어떤 잔향이 나의 오랜 향수가 되어줄까.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시가 뭐냐고 나는 시인이 못됨으로 잘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무교동과 종로와 명동과 남산과 서울역 앞을 걸었다. 저녁녘 남대문 시장 안에서 빈대떡을 먹을 때 생각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엄청난 고생 되어도 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이 있으므로 슬기롭게 사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알파이고 고귀한 인류고 영원한 광명이고 다름아닌 시인이라고.
한숨의 깊이 쉽지 않다, 살아가는 것. 원하지 않는 것들과 이별하는 것. 무언가를 넘치게 줘서 후회하는 것보다 더 주지 못해서 나오는 한숨이 훨씬 깊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관계는 신기하게 늘 끝나서 만회할 수도 없게 더 어려워지지. 예전부터 쉽지 않다고 느꼈던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 말이야.
사랑할 때의 최선 나는 늘 사랑할 때 갑이 되려고 노력한다. 내가 상대를 더 좋아하고 사랑하는 갑에 되겠다 하는 거다. 내가 더 많이 사랑을 하는 쪽이 되도록, 상대가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내가 상대를 더 많이 좋아하겠다는 말이다. 사랑함에 있어서 갑이 된다면 후회와 미련은 흐릿하게 온다. 예전의 나는 최선을 다해서 사랑하면 후회와 미련은 절대적으로 없다고 말하던 사람이었는데, 이제 와서 보니 그건 아닌 것 같다. 아주 흐릿해지기만 할 뿐. 아예 사라지는 것은 없다. 더 많이 사랑해도 후회되는 것은 항상 있을 것이다.
종이 새하얀 종이보다는 한 번 쓴 종이를 녹여서 다시 만든 재생지가 좋다. 그 누구의 손길도 닿지 않은 새로운 것보다는 조금은 때묻은 것들이 좋다. 당신의 처음이 내가 아니라고 해도 닳아버린 것들을 걱정한다 해도 닳아진 당신의 마음에 스며들 수 있어서 좋다.
회피하지 마라, 그대 피하지 마라, 그래 사람이 가장 무섭긴 해도 가장 다정하기도 하다. 상처가 자꾸만 앞을 가리는가. 자꾸 남들의 향을 맡고 겁을 내는가. 눈을 뜨지도 못하고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주눅 드는가. 가질 수 없는 것들을 원하고 있지는 않는가. 저 먼 세계에서 걸어 다닐 생각을 하느라 그대가 지금 밟고 서 있는 이 땅을 소홀히 여기지는 않는가. 사랑을 회피하지 마라. 사람에게서 떠나가려고 하지 마라. 당신에게 다가오는 설렘도 제대로 보관하지 못하면서 과연 먼 미래에 누군가를 품을 수 있을까.
비포장도로 내 삶이 삐걱거릴 때 너는 내게로 왔다. 비포장도로를 지나가면 느껴지는 충격들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를 격하게 여행하다 마음 한구석을 잃어버려 좌절하고 있을 때 너는 내 앞으로 왔다. 어색한 공기만 가득 차 있던 그 공간으로 문을 열고 들어와 벽이었던 내 마을을 크게 열고는 웃어주었다. 너라면, 너라는 사람이라면 사랑을 상상해도, 나락에 떨져도 좋겠다 싶었다. 영영 깊은 곳으로 추락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