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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맨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사랑할 땐 계절을 닮았다. 여름엔 살이 보이는 옷을 입는 게 당연한 것처럼 너와 내 관계가 뜨거워질 때는 서로 숨기려 하지 않고, 모든 것에 솔직했다. 가을이 찾아오고 공기가 차가워질 땐 살이 보이지 않는 옷을 입는 게 당연한 것처럼 너와 내 관계가 차가워질 때는 서로 조금씩 감추기 시작했다. 그러다 봄이 찾아오면 또다시 여름이 오겠지만 우리에게 봄이 찾아오지 않는다면 언젠가 모든 것이 꽁꽁 얼어 더는 숨길 것 없이 그대로 멈춘 채 죽어가겠지.
눈 내리던 어느 날 눈이 온다는 핑계로 네게 연락을 하고 싶었다. 아마 네게 연락을 할 수 있는 내 마지막 핑곗거리가 될 것이다. 눈이 내리는 장면을 바라보는 걸 좋아하던 너라서. 눈이 내릴 때면 항상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지켜보던 너라서. 네게 눈이 온다는 핑계로 연락하고 싶었다. 그렇게 내 마지막 핑곗거리는 정말로 마지막이 되었고, 눈이 오는 날이면 또다시 네 전화번호를 보면서 눈처럼 녹아내린다.
선물 같은 사람 몇 계절을 떠돌다 만난 당신은잠시 뒤돌면 떠나버릴까 불안했고닿으면 닳을까 두려웠다. 그런 당신에게 나는 매번 서툴고 여전히 삐긋거리지만당신은 내가 가장 아끼는 선물 같은 사람이다. 당신을 만나기 전까지 홀로 많은 계절을 의미 없이 보냈다하더라도 지금 나는 당신을 만났기에 그 시간이 결코 의미없었다 생각하지 않는다. 그 시간을 겪었기 때문에 당신이더 소중 하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당신에게 나도 늘 선물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사랑하는 내 사람.오늘도 나는 당신에게 선물이길.우리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길.
그때처럼 어느 날 바람에 네 향기가 실려 들어와뒤를 돌아봤을 뿐이었는데나는 그 향기에 아이처럼 울어버렸다. 네가 온 줄 알고,그때처럼 웃으며 내 이름을 부르는 줄 알고.
나는 안다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누군가에 위로가 될 때가 있다.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누군가에게 위로가 된다는 것을 알고 더욱 귀를 기울인다. 나는 그 사람을 듣는다. 그 사람은 나로 인해 위로가 된다고말한다. 나는 안다. 그 사람에게 내가 위로하는 것을. 누군가를 위로해주는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다.그저 그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월여 들어주는 것그리고 그 사람의 기분을 물어보는 것이면 된다. "오늘 하루는 어땠어요?"
잔향 누군가를 그리원한다는 거,그것 참 쉬운 일이 아니었다. 누군가 잠시 들어왔다 어느 순간 비어버린 자리를멍하니 바라봐야 한다는 것.그것도 혼자서묵묵히. 마음에 자리를 내어주고 남겨진 자리엔여전히 그의 잔향이 남아 있다. 이젠 어떤 잔향이 나의 오랜 향수가 되어줄까.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시가 뭐냐고 나는 시인이 못됨으로 잘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무교동과 종로와 명동과 남산과 서울역 앞을 걸었다. 저녁녘 남대문 시장 안에서 빈대떡을 먹을 때 생각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엄청난 고생 되어도 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이 있으므로 슬기롭게 사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알파이고 고귀한 인류고 영원한 광명이고 다름아닌 시인이라고.
한숨의 깊이 쉽지 않다, 살아가는 것. 원하지 않는 것들과 이별하는 것. 무언가를 넘치게 줘서 후회하는 것보다 더 주지 못해서 나오는 한숨이 훨씬 깊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관계는 신기하게 늘 끝나서 만회할 수도 없게 더 어려워지지. 예전부터 쉽지 않다고 느꼈던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 말이야.
사랑할 때의 최선 나는 늘 사랑할 때 갑이 되려고 노력한다. 내가 상대를 더 좋아하고 사랑하는 갑에 되겠다 하는 거다. 내가 더 많이 사랑을 하는 쪽이 되도록, 상대가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내가 상대를 더 많이 좋아하겠다는 말이다. 사랑함에 있어서 갑이 된다면 후회와 미련은 흐릿하게 온다. 예전의 나는 최선을 다해서 사랑하면 후회와 미련은 절대적으로 없다고 말하던 사람이었는데, 이제 와서 보니 그건 아닌 것 같다. 아주 흐릿해지기만 할 뿐. 아예 사라지는 것은 없다. 더 많이 사랑해도 후회되는 것은 항상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