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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맨
관계의 허무 나는 내 사람이다 싶으면 그 사람의 일도 나의 일인 것처럼 아파한다. 어쩔 땐 당사자보다 더 몰입하기도 하고, 도와주기도 한다. 그런데 정작 그 사람들이 나를 소중히 생각하지 않으면 그게 너무 슬퍼서 결국 모든 관계가 허무해진다. 가끔은 이런 내가 원망스러울 때도 있다. 내 인생도 제대로 책임지지 못하면서 남의 삶에 자꾸 관심을 가지고 힘들어하니까. 나만 소중하게 생각하는 인연이 불러오는 아픔을 알면서도 멈출 수가 없으니까, 참 바보 같다. 하지만 결과가 허무하다고 해서 그 사람의 일을 외면해버리면 과연 괴롭지 않을까? 해도 걱정, 안 해도 걱정이라면 차라리 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최소한 나는 그 사람들에게 절실했던 거니까,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았을 때 내가 줬던 것들엔 전혀 후회가 없겠지..
사람을 미뤄두기로 했다 당분간 사람을 미뤄두기로 했다. 사랑을 잠시 떠올리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일이 너무 바빠서 여유가 생기지 않는 것도 아니고, 사람에게 받은 상처가 저릴 만큼 생생해서 무서운 것도 아닌데 어쩌자고 나는 사람을 미뤄두기로 했을까. 완전하기 않은 사람이라 그랬던 걸까, 완벽한 사랑을 몰라서 그랬던 걸까. 사람을 미뤄두는 것조차도 확실한 이유가 없는 게 나란 사람인데 이런 나에게도 자꾸 연락이 온다. 사람을 만나지 않는다고 설명해도 연락이 온다. '혼자 좋아하면 된다'라는 말로 자꾸 다가온다. 신경 쓰이지 않는 척하지만 은근히 신경이 쓰이는 게 이 사람 작전에 휘말린 것 같아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가만 생각해보면 나는 누군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이렇게까지 노력한 적 있었다. 아니, 눈..
바다의 말 바닷물이 발을 적실 만큼의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웃는 얼굴을 하면서 슬퍼하고 있었다. 넓은 바다가 나에게 말을 했다. "뭐가 그렇게 슬프니>" 나는 대답했다. "사람들은 나의 진심을 몰라주는 것 같아요. 매번 진심을 꺼내기도 전에 나를 떠나고, 나는 그런 것이 두려워 진실도지 않은 나를 보여주려 해요. 참 답답하죠." 그러자 바다가 마치 정신을 차리라는 듯 나의 발을 한 번 더 적시며 말을 했다. "나도 그래. 사람들은 나의 겉부분에서만 머무르다가 떠나가고, 나의 깊은 속은 무섭다고 보지 않으려 해. 하지만 그렇다고 좌절하면 될까? 나의 깊은 속은 아름답게 가꾸지 않아도 될까? 아니야. 나는 사람들이 나의 겉부분만 본다고 해도 마음을 가꾸는 것을 멈추지 않아. 나는 지금 많은 생명을 품고 있고..
사진첩 사랑은 사진이 빛이 바랬다고 새로운 사진을 찍는 게 아니라 우리 이렇게 오래 만났구나 하고 그 사진을 오래오래 간직하는 것이고, 사랑은 음식이 식었다고 새로운 음식을 시키는 게 아니라 그 음식에 다시 따뜻함을 불어 넣는 일이다. 사랑은 갈아치울 수 있는 부품 같은 게 아니다. 기계에서는 어느 부분이 고장 나면 간편히 교체할 수 있지만, 사랑은 그럴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마음껏 사진을 찍지 못해서 아쉬움이 남았던 적이 있어서 이제는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흔적이 될지 잘안다. 기록하지 않으면 순간으 스쳐가고, 스쳐간 순간들은 점점 바래진다. 뒤늦게 사진첩을 뒤적거렸는데 그 때 그 순간이 없다면 허무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클 테니, 우리 사진을 찍자. 사랑하는 동안은 그 순..